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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시사

광화문광장, 광화문의 역사와 현장 직접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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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8월 6일자로 새롭게 장단을 끝마치고 재개장한 '광화문광장'을 직접 가본 후기를 올려볼까 한다.

 

이에 앞서 간단하게 '광화문광장'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아, 배경 설명 삼아 관련 역사를 조금 훑어보고자 한다.

 

'광화문광장'의 역사는 꽤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데,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 있던 고려 도읍지를 한양(서울)으로 옮기면서 조선의 임금이 거처하고 사무를 보는 법궁(法宮)인 '경복궁'을 만들었는데, 이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쪽으로 넓게 큰 길을 만들어 거리 양옆에 의정부를 비롯하여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 등 국가의 주요 기관들의 건물을 배치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광화문광장' 양쪽 옆으로 조선시대 국가 주요기관들이 위치해 있었는데, 임진왜란 시기 광화문이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광화문 앞길은 육조거리(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 등 6조)로서 중요 관청들이 모여 있는 관청가였다고 한다.

 

1900년경 촬영된 사진으로 광화문 앞이 꽤 넓은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고, 해태상이 광화문 바로 앞이 아니라 꽤 멀리 앞으로 나와서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02년경 촬영된 광화문 사진

 

1904년 미국인 윌러드 스트레이트가 촬영한 광화문(이 사진에서도 해태상이 최소한 100m 앞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도 비슷하다. 광화문에서 바라보았을 때 앞쪽 오른 편으로 '정부서울청사 / 외교부 청사(정부서울청사 별관) / 세종문화회관' 등이 줄지어 배치되어 있고, 앞쪽 좌측 편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 미국대사관 / KT 한국통신' 건물등이 줄지어 서 있으니 지금도 관청가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광화문 광장의 현 위치

 

광화문은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복원됐지만,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 경복궁 내에 조선총독부 건물(해방 이후 '중앙청'으로 호칭)이 세워지면서 경복궁 동쪽으로 강제 이전되는 비극을 맞이 했다.

 

1916~1926년 조선총독부 건립 공사

 

일제 강점기 당시 경복궁 여러 건물을 훼손하고 지어진 조선총독부

 

 

1930년대 광화문광장 일대와 조선총독부, 경복궁 일대의 모습

 

1948년 중앙청 모습과 앞길 (우측 편에는 6조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느 관청의 기와집이 보인다)

 

1948년경 중앙청에서 바라본 현재의 광화문광장 일대 모습

 

 

조선총독부 건물은 1916년부터 1926년까지 10년간 건축 공사를 통해 우리나라 궁전인 경복궁 건물의 1/3 이상(광화문과 근정전 사이 흥례문과 그 좌우 행각들을 자기들 멋대로 파손)을 훼손시켜가면서 지어졌는데, 해방 이후 미 군정청이 입주했다가 한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중앙청'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한국 정부가  1982년까지 정부중앙청사로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중앙청'이 불에 타는 일도 있었다.

 

1950년 6.25전쟁 당시 불에 탄 중앙청 모습

 

 

'광화문'의 경우  1926년 조선총독부 청사의 완공과 함께 1927년 일제에 의해 경복궁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지만, 한국전쟁 중 파손되어 문루가 소실된 채 한동안 방치되어 왔다고 한다.

 

1926~1927년 광화문 해체 및 건춘문 북쪽으로 이전

 

1926~1927년 광화문 해체 및 건춘문 북쪽으로 이전된 모습

 

6.25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상태로 방치되었던 광화문

 

제3공화국이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한일수교(1965.12.18) 직후인 1966년 초 광화문을 복원해서 민족정기의 상징으로 삼으라고 지시되어 1968년 12월 11일 광화문 복원이 이루어졌다. 항간에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적인 인물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자세한 마음 속 내막과 진심도 잘 모르면서 일부 행적만을 갖고 매도하는 얘기라 다소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

 

1968년 광화문이 중앙청 앞에 복원된 후 기념행사를 하는 모습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복원한 광화문의 모습과 아직 건축 중이던 정부서울청사의 모습

 

1972년 당시의 광화문광장 일대의 모습

 

1980년대말 광화문의 모습

 

1968년부터 1995년까지의 광화문 모습

 

그 이후 1986년 8월 21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쓰이다가,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으로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일제 잔재 청산과 민족 정기 회복을 위해 철거되었다. 

 

철거되는 조선총독부 건물 1

 

철거되는 조선총독부 건물 2

 

철거되는 조선총독부 건물 3

 

철거 전 모습

 

철거 후 모습 (확실히 뭔가 막혔던 것이 뻥 뚫린 것 같죠?)

 

아무튼 1968년 당시 광화문 복원이 이루어졌으나, 콘크리트로 광화문이 다시 만들어지고 그 위치와 건축소재면에서 고증 논란이 끊이지 않다가, 1995년에 조선총독부(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을 철거한 이후 그대로 존치되어 있었으나 2007년 콘크리트로 만든 광화문을 철거하고, 2008년 고증을 통해 광화문의 방향과 담장 형태, 길이 등을 일부 수정하여 커다란 돌과 강원도 금강송 등을 사용하여 원래의 자리에 제대로 복원을 완료하였다.(당시 광화문을 복원하는 공사를 담당한 무형문화재 대목장이 강원도 금강송에 욕심이 났는지, 자신의 갖고 있던 다른 나무들과 바꿔치기를 해서 형사처벌을 받은 바 있다.)

 

 

2008년 재복원 이후 제 모습을 찾은 광화문과 경복궁의 모습

 

이로인해 일본 제국주의에 병합되면서 조선 법궁인 '경복궁'이 마구잡이로 훼손되었다가 제 모습을 다시 찾게 되었으며,  '광화문광장'에서 경복궁 방향을 바라보았을 때 조선시대 왕궁와 현대 건축물들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과거 오래된 일부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광화문 앞길은 광장의 성격이라기 보다는 커다란 규모의 중앙 통행로의 의미가 강했고, 한 때는 도로 중앙에 나무들을 심어서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지만,

2008년 광화문의 복원과 함께 2009년 광화문 앞길을 그 의미와 기능에 맞도록 처음으로 광장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60년대 광화문광장 일대의 모습과 광화문 자리에 있던 중앙청의 모습

 

1972년 광화문광장 일대의 모습

 

2008년 광화문광장 조성공사를 앞둔 현재의 광화문광장 일대의 모습(이순신 장군 동상의 뒷편 광경이 저랬었다.)

 

2009년 7월 당시 광화문광장이 생겼을 때 조감도(이 때는 광화문광장이 양측 도로 사이에 있는 큰 섬 또는 배 모양 같았다)

 

 

그 이후 '광화문광장'은 때로는 국민의 휴식과 산책의 공간으로도 활용되었고, 각종 축제나 행사장으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각종 집회 및 시위의 공간으로도 활용되기도 하였다.

 

당시 '광화문광장'은 광장을 둘러싸고 차량 통행이 이루어지는 양방향 넓은 차선이 있어 마치 섬처럼 고립된 공간이었고, 차선 횡단보도를 통해 진입하던 것을 세종문화회관 방향의 차선을 없애고 해당 지역을 녹지로 조성하는 공사를 하느라 한동안 폐쇄하였다가 이번 2022년 8월 6일 재개장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단장한 '광화문광장'은 그 의미로 보나, 역사로 보나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을 비롯하여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도 겸사겸사 한 번쯤은 찾아봐야 하는 명소가 되었다.

 

그래서 저 역시 반가운 마음으로 '광화문광장'을 직접 방문해보았다.

 

바로 이곳이 광화문광장 남측 초입 부분이다. 좌측에는 새로 조성된 나무숲이 시작되고, 우측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위치해있다.

 

먼저 이순신 장군 동상이 위치한 곳을 기준으로 하여 빙 둘러서 어떤 건물들이 있는지 살펴보겠다.

 

이 곳에서 우측을 바라보면 '고종 칭경기념비(고종이 직접 정사를 돌보기 시작한 것을 기념)'가 보이고, 그 좌측에 보이는 빌딩이 '교보빌딩'이다.

 

우측 편으로 바라보면 작은 정자처럼 생긴 전각이 하나 있는데, 이 전각이 바로 조선시대 고종 당시 세워진 '고종 칭경기념비'이다. 저 전각 내부에 '기념비'가 들어 있다.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오랜 세월 어린 아들 고종을 대신해서 대리로 나라를 다스렸는데, 그러다가 고종이 성인이 된 후 직접 나라를 다스리게 된 것을 기념하여 '칭경기념비'를 세우게 된 것이다.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고종이 칭경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하게 기념할 일이라고 많은 돈을 들여서 저런 기념비까지 세웠는지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고종이 정치를 잘 한 것도 아니고, 일제에 나라까지 눈뜨고 빼앗긴 임금인데... 

 

 

'고종 칭경기념비' 오른쪽 길 건너편에 위치한 아이보리색 6층 건물이 일민미술관이고, 그 좌측 뒷편이 광화문 우체국, 오른쪽 뒷편이 동아일보사 / 채널 A 종편방송국이다.

 

'고종 칭경기념비' 우측으로 길을 건너면 보이는 건물들이 지금 보이는 사진처럼 아이보리색 '일민도서관'이다. 저 건물도 꽤 오래된 건물로 일제 강점기이던 1926년에 '동아일보 사옥'으로 지어진 건물이고, 현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31호로 지난 2001년에 지정된 건물이다. 1996년에 리모델링을 거쳐 일민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민미술관' 좌측 뒷편에는 '광화문우체국'이 위치해있고, 오른쪽 뒷편에는 '동아일보사 / 채널A 종편 방송국'이 위치해 있다. 

 

사진 제일 우측편 원뿔 조형물부터 '청계천 산책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일민미술관 맞은편 도로를 건너면 멀리 '조선일보사' 건물과 그 우측편에 '동화면세점' 빌딩이 보인다.

 

'일민미술관'  맞은편으로는 '동화면세점' 건물이 크게 보이고, 사진 중앙 멀리로 '조선일보사 / 코리아나호텔' 건물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조선일보 방향으로 곧장 가게 되면 좌측 편으로 '서울시청'이 있고, 우측 편으로는 '덕수궁'이 나오고 조금 더 직진하면 '남대문'이 나오게 된다.

 

 

동화면세점 방향에서 광화문광장 방향으로 길을 건너면 아이보리색 뒷편에 '포시즌즈 호텔'이 보이고, 아이보리 옆에는 '현대해상화재보험'이 있다.

 

'동화면세점'에서 '광화문광장' 방향으로 길을 건너면 좌측 뒷편으로 '포시즌즈호텔'이 있다. '광화문광장'을 따라서는 '현대해상화재보험' - '세종문화회관'  - '외교부 청사(정부서울청사 별관)' - '정부서울청사' 등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분수대가 위치해 있어서 무더운 여름 날씨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다소 시원한 기분이 들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역시 이순신 장군님은 최고다.

 

제일 아래 사진의 뒷쪽 편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지하에 '교보문고'가 위치한 '교보빌딩'이고, 그 좌측에 보이는 건물이 'KT 광화문지사' 사진인데 지금 한창 리모델링 공사 중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 하단 좌우측에도 부조 형태로 거북선의 전투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광화문광장' 좌측편 나무숲 쪽으로 이동을 해보도록 하자.

 

이곳은 서울 지하철 5호선 7번 출구도 위치해 있는 곳이니 지하철 이용하시는 분들은 이쪽으로 나오시면 곧바로 '광화문광장'으로 나오실 수 있다.

 

 

 

 

 

광화문광장 안내도가 광장 초입에 설치되어 있는데, 아직까지 비닐랩 포장이 씌워져 있다. 그만큼 아직 따끈따끈한 신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광화문광장 나무숲의 모습인데, 그 옆에 요즘 보기 힘들다는 공중전화기 부스가 있어서 찍어봤다.

 

 

 

 

 

 

 

 

그런데 나무 위에 뭔가 열매 같은 게 달려 있어서 확대해서 사진을 찍어보니 탐스런 열매들이 여러 군데 달려 있었다. 제가 나무 이름을 잘 모르겠으나, 열매 생긴 것을 봐서는 '으름' 같기도 한데 덩쿨성 식물로 알고 있는데, 저 열매는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라도 아시는 분이 계시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무숲은 아직까지는 나무들이 정착되지 않은 듯 숲으로서의 기능은 다소 떨어지지만, 많은 분들이 벤치에 앉아 나름대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중간에 수도 시설도 되어 있어 손을 씻기에도 좋을 듯 하다.

 

숲길을 지나니 분수대가 나오고, 그 안에서 어린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아이들의 보호자들이 앉아서 있을 수 있도록 벤치 시설도 되어 있었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 계단식 벤치 겸 간이 무대와 같은 공간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군데군데 손을 봐야 하는지 공사 차량들이 세워져 있었다.

 

 

예전에 분홍색 현수막인 'LIFE IS COLOR' 아래에 청동으로 만든 동상이 있는 벤치가 있었는데...어디론가 치워지고 없다.

 

세종문화회관의 전경

 

'세종문화회관' 일대의 모습이다. 이 위치 정도가 '광화문광장'의 중앙 정도 위치이다.  '세종문화회관' 바로 맞은 편에 '세종문화회관'의 주인공이자, 이곳이 위치한 '세종로' 길의 주인공인 '세종대왕 동상'이 위치해 있다.

 

 

사진 좌측 건물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고, 우측 건물이 '주한미국대사관' 건물이다.

 

혼천의(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관측하던 장비이며, 이것은 재현품으로 실물은 문화재로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측우기(비가 오면 얼마나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원통 안의 수량을 계측하던 장비)

 

해시계(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을 계측하던 장비)

 

훈민정음에서 밝힌 한글 창제의 취지

 

세종대왕 동상의 정면

 

세종대왕동상의 측면

 

세종대왕 동상의 후면

 

 

'세종대왕 동상' 주변에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알 수 있는 여러 유물들의 재현품, 한글 조각품, 세종대왕 일생을 기록한 벽화 형태의 부조 등을 볼 수 있다.

 

 

 

세종대왕 동상을 지나면 좌측 편으로 또다시 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곳으로 가보았다.

 

나무숲 안에 휴식 공간이 있다.

 

휴식공간 오른 편으로 조선시대 사헌부가 있던 유적터가 전시되어 있다.

 

'사헌부 문 터' 바로 뒷편에는 이렇게 물이 작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다.

 

 

'사헌부 문 터'를 지나면 이렇게 넓은 공터가 나온다. 이 쪽으로 가기 전에 좌측 편을 외교부 청사 쪽을 보면 또 다른 공원 같은 곳이 나오는데, 이곳은 지하에는 '세종로 주차장'이고, 그 위에 공원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이번에 광화문광장과 서로 연결이 되어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세종문화회관 옆(외교부 청사 옆) 공원에는 야외 커피숍도 있어서 파리지엥이 된 것 같은 분위기로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이 나무는 도대체 이름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곳 외교부 청사 옆 공원에는 유명 시인의 시비, 한글어학회 관련 기념비 등이 산재해있어 나름대로 구경하는 재미가 있고, 야외 커피숍도 있어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다시 아까 '사헌부 문 터' 뒷쪽편으로 다시 돌아와서 나머지 부분을 보러 가보았다.

 

 

이렇게 사헌부 문 터 방향으로 물이 흘러내려가서 폭포같은 곳에서 물이 다시 집수되어 회전하는 듯 했다.

 

이곳을 자유롭게 만끽하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들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청사(정부서울청사 별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벽면 대형 3D 영상 스크린

 

광화문 모습(아직도 공사 중인 모습이다)

 

이렇게 광화문으로 연결이 되면서 '광화문광장'은 끝이 난다. 반대로 가게 될 경우는 당연히 여기부터가 시작점이 된다. 아직도 광화문 앞쪽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예전에는 횡단보도가 광화문 정면으로는 없었고 조금 돌아서 가야 했는데, 이번 재개장 이후부터는 광화문 정면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가 생겼다. 정말 잘 한 조치로 보인다.

 

오늘은 '광화문광장'의 재개장과 관련하여 그 역사부터 최신 방문 사진 영상까지 보실 수 있도록 모처럼 시간이 여유로와서 정리를 한 번 해보았다.

 

여러분들도 시간을 내셔서 한 번쯤 가보실 만한 곳으로 추천해드며, 이곳 '광화문광장' 뿐만 아니라 주변에 위치한 관광지들(경복궁,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세종문화회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일민미술관, 서촌, 북촌, 사직단공원, 청와대, 인사동 등등)과 연계한 관광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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