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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시사

[탐정 리얼 스토리] 학교폭력, 더 이상 용서하고 이해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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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활동을 하다보면 다양한 의뢰가 들어온다.

 

그 중에 최근 많이 들어오는 사건 중 하나가 학교폭력 사건이다.

 

학교폭력 사건이 탐정에게까지 의뢰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학교 내에서 문제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 내 학교에는 학교폭력을 전담하는 학교전담경찰관(SPO)도 있고, 각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에서 매년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통해 학교폭력 존재 유무를 점검하기도 한다. 당연히 학교별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응을 위한 자체 교육프로그램과 캠페인 전개, 순찰, 상담 활동들을 수시로 전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학교폭력 문제가 근절되지 않고, 학교 내에서 종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가해자 학생도 학생이다보니 어떻게든 잘 계도하여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왠만하면 선처해주고, 용서해주는 문화가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고쳐지지 않고 계속 이어질까?

 

이 역시 세 살 때 잘못했던 버르장머리를 제대로 고쳐주지 못하고, '어리니까 저럴 수 있지.', '아직 철이 없으니까 저럴 수 있지.',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정신차리고 괜찮아질거야.', '누구나 저 나이 때는 다 그런 법이야. 그냥 알아듣게 잘 타일러라.'  늘 이런 식으로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초창기에 자기가 해도 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알도록 부모가 가정교육을 잘 시켜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기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러도 별다른 죄의식을 갖지도 않고, 잘못에 대한 반성도 제대로 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이 정도는 하더라도 크게 잘못되지 않고, 별로 혼 나지도 않는다는 인식이 이미 뇌 속 깊숙히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냥 잠깐 잔소리를 듣게 되면 별다른 문제없이 쉽게 끝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어릴 때 나보다 약자인 동네 친구의 장난감을 빼앗더라도 크게 혼이 나지 않고, 동네 친구를 적당한 정도로 몇 대 때리더라도 크게 혼나지 않는 경우들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학습효과는 나이가 들어 성장해도 크게 바뀌지 않게 된다. 그래서 결국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어떤 학생이 초등학교에 진학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동급생이 있을 때 가볍게 뒷통수 한 대를 때리거나, 엉덩이를 발로 한 대 차는 정도는 그냥 장난 정도이고,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수준으로 이해하는 학생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나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학생들 속에서는 이것을 학교폭력으로 인식하는 학생들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학교폭력 설문이나 상담시간에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이 저지른 사건에 대해 신고를 할 경우, 이를 조사한 학교 교사나 학교전담경찰관(SPO)들 중에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서는 가볍게 또는 따끔한 훈계 정도로 넘기는 경우들이 많다.

 

그 이유는 사안이 상해진단을 발급받을 만큼 심각한 상태가 아니고, 가해 학생도 어떤 고의성을 갖고 심각한 수준의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해 학생에 대한 계도 수준으로 처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가해 학생 입장에서는 "역시 그렇지. 이번에도 별 것 없이 쉽게 넘어가는구나. 이 정도는 누구나 이해해주는 수준이다."라고 다시 한 번 생각을 굳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가해 학생이 나이가 더 들면서 고학년으로 진학하더라도 학교폭력에 대한 나쁜 습관이 개선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진다. 과거 학교폭력에 대한 학습경험이 크게 자신에게 손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이 정도 하더라도 어떻게든 해결될거야'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만약 어렸을 때 그러한 문제가 발생됐을 때 당시 자신이 생각한 수준보다도 훨씬 강력하게 처벌을 받았을 경우라면, 과연 그런 행동에 대해 별다른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위해를 가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제재와 손해가 나에게 발생되는 지를 명확하게 일찍부터 알려줬더라면 더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최근 나이는 어림에도 저지르는 범죄의 수준이 매우 흉포화되고 있다. 일명 '촉법소년'이라고 하여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14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촉법소년'의 범죄가 전체 소년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 추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떤 미성년자는 이미 자신이 촉법소년이라는 것을 잘 아는 상태에서 이를 악용하여 범죄를 다시 저지르는 경우까지도 생겨나고 있다.

 

이렇게 나이 어린 가해자 또는 범죄자에 대한 선처와 훈계 수준의 처벌이 그 당사자의 미래를 더 밝고 건전하게 만들어주기 보다는 더 나쁘고 안 좋은 길로 인도해주고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확실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요즘 가정에서도 잘못한 자녀에게 훈계도 제대로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조금만 큰 소리로 혼을 내거나, 자녀에게 욕설을 하거나, 사랑의 매로 훈육하는 경우에는 곧바로 '아동학대죄'로 처벌받을 수 있고, 자기 자녀와 분리 조치를 당할 수도 있다. 이것은 곧바로 '가정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 황당무계한 사안으로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가정교육과 훈육이라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없도록 법과 제도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육원이나 유치원, 초등학교~대학교에 근무하는 교사가 이를 바로 잡아주거나 가르칠 수도 없는 지경에 놓여져 있다. 부모든, 교사든 학생에게 성의를 갖고 잔소리하면서 훈육하는 순간에 그 성의와 열정이 결국 자신에게 굴레가 되어 다가오는 세상이다.

 

이러한 시대에 과연 잘못하는 학생을 어떻게 바로 잡아줘야 할 것인가? 이제는 바뀌어진 세상에 적합하게 새로운 훈육 방법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선처와 인정을 베풀기 보다는 확실한 처벌과 제재를 가해야 한다. 그래야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지 않도록 만들 수 있고, 우리 아이가 미래에 더 큰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미리 깨우침을 줄 수 있다.

 

부모들의 자식들에 대한 과잉보호, 교사들의 선처와 방치가 점점 아이들을 정신적으로 병들게 하고 있다.

 

이제는 바뀌어진 세상에 적합한 훈육 방식을 가차없이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을 깨닫게 하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이 될 수 있다. 매우 안타깝고 어려운 일이지만, 이 사회에서 이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를 통해 이 사회에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정의와 진리, 법치와 사회질서 준수의 준엄함을 하루빨리 일찍부터 가르쳐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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